핑퐁 The Animation은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출발한다. 카타세 고등학교 탁구부의 두 신입, 페코와 스마일은 이질적이다. 그들은 카타세 고등학교 탁구부 속의 또 다른 내집단이다. 실력, 재능, 경험.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다른 부원을 앞서고 있는 이들 두 명은 또한 탁구부 속으로 녹아들지 않고, 오직 그들 두 명만의 탁구부를 만들어 행동한다. 스마일은 웃지 않으며, 페코는 연습에 참가하지 않는다. 페코는 그들의 기원인 타무라에서 신입을 박살내고, 유럽에 갈 것이라는 포부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떠벌인다. 이 시점에서 두 명에게 탁구부는 그저 잠시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의 앞으로의 여정 또한 요동친다. 두 명의 인생을 흔드는 것은 또한 그 시점에서 그들보다 압도적인 재능에 의해서다. 중국인 유학생, 콩 웽거는 페코에게 단 1점도 용납하지 않고 그를 철저하게 분쇄한다. 그러나 그 콩 웽거조차 국가대표 경쟁에서 재능이 뒤진다는 이유로 타지에 쫒겨나고 만 처지다.
서사는 오직 재능이라는 요소 단 한가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재능이 뛰어난 스마일과 페코는 탁구부를 대수롭게 여기는 한 편 그 재능 때문에 콩 웽거에게 인생의 변화를 강요당하며, 그것은 콩 웽거 또한 마찬가지다. 핑퐁의 시작은 재능을 통해 설정된 위계, 페코<스마일<콩이라는 도식을, 그리고 이러한 재능의 차를 극복하거나, 혹은 좌절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리라 예상하게 만든다. 소년만화식 스포츠물이 되는 동시에, 그러한 장르의 한계또한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첫 인터하이 예선, 콩 웽거는 그 동안 재능을 자의적으로 방기하고 있었던 스마일이 스스로의 능력을 살리기 시작하자마자 수세에 몰린다. 또한 자신의 사정을 안 스마일이 일부러 져준 덕분에 위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콩은 악몽이라도 꾼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콩의 첫 인터하이는 카자마 류이치라는, 그보다 더한 재능을 만나 비로소 완성된 악몽이 된다. 카자마는 콩을 철저하게 짖밟는다. 콩은 스스로의 패배가 오직 재능의 문제일 뿐임을 확신한다. 콩의 코치는 콩에게 네 인생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말로, 그의 재능은 탁구로 성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은유한다. 승리는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에게, 패배는 재능이 그에 미치는 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한편 스마일은 과거 자신에게 거의 이기지 못했던, 사쿠마 마나부에게 져 예선에서 탈락한다. 사쿠마 마나부는 무시무시한 표정과 악담을 제외하면, 노력에 대항하는 재능이라는 전형적인 캐릭터이나, 이는 기실 노력이라는 이름의 재능을 의미할 뿐이므로, 이 시점에서 페코는 자신의 재능을 개화한 사쿠마에게 진 것이 된다. 인터하이 예선에서도 재능이 승리 여부를 결정한다는 사상은 확고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작 3화가 흘렀을 뿐인데 재능의 위계는 끝없이 요동친다. 스마일<페코<콩이라는 1화 시점의 위계는 3화에 이르러 페코<사쿠마<콩<스마일<카자마로 바뀐다.
다음 인터하이 예선에 이르러, 위계는 또 다시 극적으로 반전된다. 첫 인터하이에서 극중 주역들 중 그 누구보다도 뒤떨어진 재능의 소유자로 보였던 페코는 스스로의 재능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것임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스마일은 오직 페코에게만 쓰러질 수 있는 인물로, 페코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경기는 시종일관 일방적으로 스마일의 승리로 끝난다. 한편 첫 인터하이 예선에서의 챔피언이었던 카자마는 외려 페코와 스마일이라는 재능의 험준한 산을 오르는 도전자의 역활로 격하된다. 사쿠마는 스마일에게 패배하여 탁구를 그만두며, 콩은 이제 페코, 스마일, 카자마 그 누구에게도 이기지 못한다. 두 번쨰 인터하이 예선의 시점에 이르러, 재능의 위계는 사쿠마<콩<카자마<스마일<페코로 일변한다.
이 재능의 키재기는 그러나 결말에서 또한 충격적으로 변화한다. 페코가 독보적인 재능을 뽐내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간다.하지만 첫 인터하이 예선에서 스마일의 뛰어난 실력을 장식하기 위한 제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한 조연 캐릭터는 결말에 이르러 국가 대표에 선발된다. 또한 그 누구도 이기지 못했던 콩 웽거가 우수한 국가 대표 선수가 되며, 반대로 카자마는 부상에 신음하며 국가대표 선발에 탈락한다.
이 지점에서 핑퐁 the Animation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핑퐁은 재능을 양면적으로 접근한다. 표면적으로 핑퐁은 재능지상주의의 선봉에 선다. 재능이 없는 자는 패배한다. 재능 없는 자는 재능 있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심층적으로, 재능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한다. 페코는 스마일에게 승리한다. 그 뒤 페코는 스마일에게 패배한다. 그 뒤 다시 페코는 스마일에게 승리한다. 카자마는 페코와 스마일 모두를 이긴다.그러나 그 후 카자마는 페코와 스마일 모두에게 진다. 콩은 페코에게 진다. 콩은 스마일을 이긴다. 그러나 또한 콩은 스마일에게 진다. 작 중 주역들은 누군가에게 이기고, 또한 그 누군가에게 패배함을 쉴새없이 반복한다.
그들에게 재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한계 또한 어쩌면 존재한다. 재능이라는 것이 있으며, 각자가 가진 재능엔 차이가 있다는 것 또한 어느정도는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같은 일을 할 떄 다른 누군가보다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재능을 얼마나 가졌는가는 단지 고등학교 3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은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를 살아간다. 역사적 재능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진입장벽이 초심자 앞에 선다. 모든 입문자들은 진입 장벽에 아로새겨진 방대하고도 거대한 맥락 앞에서 좌절당한다. 한 인간은 단지 스스로의 재능을 증명하기 위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 시험을 강요당한다. 끝없는 발전의 연속 속에서 고등학교는 영원한 미정의 시기가 된다. 그들은 그저 탁구라는 자리의 말석에 앉아있을 뿐이다.
핑퐁은 스포츠 만화가 순간의 장르라는 것을 이용한다. 재능이라는 벽을 뛰어넘는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실제적 측면에서 동일한 재능과 노력을 억지로 분리하여 노력과 진정성을 재능보다도 압도적인(동시에 억지로 분리시킨 재능과 진정성을 그 증명과정 속에서 다시금 재능의 영역으로 재환원하는) 무언가로 격상시키기 위해 재능을 수치화, 정수화 하는 자기 모순을 재반복하는 대신에, 핑퐁은 오히려 그 순간의 시기가 재능을 확정시키지 못함을 보인다. 콩 웽거는 첫 인터하이 직후 미래엔 자기처럼 될 수 있을지를 묻는 탁구부원에게,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나 겨울, 그는 비슷한 질문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숨겨진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대답을 바꾼다.
재능이 확정되지 못함으로 인해 재능이라는 개념은 상실된다. 끝없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따라잡고 역전하는 과정 속에서 그 누구도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재능이 상실됨에 따라 재능을 극복할 필요성 또한 없어진다. 따라서 재능의 대립항으로서 노력을 제시해야 할 동기조차 없어진다. 자기모순은 해소된다. 그로 인해 서사성은 더욱 더 강렬해진다. 끝없는 변동성 속에서 스포츠물의 순간의 중요성은 증폭된다. 오늘 이기지 못한 상대를 내일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변동성이 모두에게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베푼다. 상존하는 희비는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확정되지 않는 내일이어야만이 그들에게 현재를 더욱 충실케하는 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핑퐁은 스포츠물에서 재능이라는 망령을 제거함으로서, 스포츠물을 스스로가 있어야 할 본 영역으로 귀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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