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핑퐁 the Animation - 서문

Nihila 2015. 10. 25. 01:35

두 가지 명제가 있다. 재능이야말로 모든 것인가? 아니면 노력이야말로 성공의 원천인가? 이 두 명제는 일본의 스포츠 만화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만화의 세계 속에서 재능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오직 재능 만이 있는 세상에서, 재능이 없는 주인공은 멸시당하나 이내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 승리를 만끽하며, 재능이 있는 주인공은 재능이 없는 자들을 철저하게 분쇄한다. 반면에 또 다른 세상에선 오직 노력만이 인간의 능력을 발현케한다. 재능은 노력 없이는 그저 썩어들어갈 운명에 지나지 않는 무언가일 뿐이다. 이 고전적인 대립은 마치 너무나 당연한 듯이, 계속하여 상황과 인물을 변주하며 이어진다. 

스포츠 만화에서 성전과도 같이 숭배받는 재능 혹은 노력은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치명적인 문제들을 내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립하는 것같은 이 두 단어는영웅적인 주인공 일행과 그 대립자들이 그들 아래의 패배자들을 부정한 자로 격하하기 위한 주된 논거로서 사용됨으로써 실제적 측면에서 단지 그 발현 방식만이 다른 엘리트주의의 아종들임에 지나지 않는다. 초인적인 재능을 가진 자들이 재능 없는 자를 비웃는 상황을 초인적인 노력을 한 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 자들을 비웃는 상황으로 치환하는 것은 너무나도 손쉽다. 초인적이라는 영웅성 앞에서 재능은 생득적이며 노력은 그렇지 않다는 명제의 설득력은 상실된다. 초인적인 노력 또한 영웅성이라는 생득적 가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허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을 택하든, 재능을 택하든, 주인공은 처음엔 자기와 같은 자리에 있었던 자들을 남겨두고 훨씬 강했던 상대들을 앞질러간다. 적의 강함은 주인공의 승리를 장식하기 위해 존재한다. 표면적인 논리인 주인공의 노력/재능은 심층적인 논리인, 주인공의 승리를 포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승리는 곧 긍정적인 가치를 함유한다. 또한 스포츠 경기 내의 패배는 곧 그 존재의 패배이다. 패배한 자의 사상은 부정된다. 스포츠 게임의 승리를 통해 승리자의 사상마저 승리한다. 이렇게 작품에 의해 지지받는 인물은 단지 스포츠의 고수가 아닌 전인적 초인으로 도약한다. 그리고 작품을 그 초월성을 보여줌으로써, 초월성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므로, 엘리트주의는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의도적인 사상적 배경이 된다. 

  노력과 재능이 스포츠 만화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임은 유전이 어떤 방식으로 스포츠 만화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가를 고찰함을 통해 알 수 있다. 주역들의 가족은 주역들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혹은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종종 나타나곤 한다. 이들 가족들은 주역들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끼치는 것 이외에도 결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주역의 가족들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들의 유전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주역들도 또한 뛰어나다는 것이다. 유전이라는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주역의 영웅성은 한 층 더 비범해지며, 범인들과 주역들 사이의 위계를 설정한다. 이러한 장치를 서사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언뜻 볼 때 재능지상주의를 보이는 작품에서만 사용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비상한 노력 또한 선대가 노력을 통해 비범한 경지에 올랐던 배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역 또한 가능했다던가 하는 설명을 통해, 노력에 의한 성장 속도, 혹은 노력하는 성향 그 자체가 유전적 혈통에 의해 지지받음으로서, 노력에 의한 승리조차도 기실 후천적인 것에서 선천적인 무언가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장을 통해 노력과 재능은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뒤섞여, 표면적으로 두 성질은 대립하나 내적으로는 동일하다는 모순을 회피하는 것이다.

스포츠 만화 속에서 경기의 승패는 실력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에서 결정된다. 뛰어난 쪽이 이기고, 부족한 쪽이 진다. 그런데 승패와 실력은 단순히 현재를 평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재능과 한계에 대한 예견으로 이어진다. 현재 A에게 패배한 B는 A보다 선천적인 재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며 그 결과 영원히 A는 B보다 더 우월하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물의 특정한 시간대만을 그리는 특성 상 위와 같은 승부에 의해서 판결된 재능의 차이는 그대로 결말까지 이어져, 한 인물의 인생을 은유적으로 결정짓는다.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자들은 또한 인생 전 시기를 걸쳐 대단한 업적을 이룬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거나 몰락한다. 재능의 한계치는 마치  수치적으로 계량화라도 가능한 것처럼 너무나도 단정적으로 밝혀지고 고정된다. 이는 스포츠 만화가 노력/재능이라는 용어를 전개 상의 장치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재능과 노력은 측정가능하다. 그렇기에 재능과 노력을 통해 손쉽게 위계를 설정하고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허구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재능과 노력은 측정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재능과 노력은 측정불가능하기에 한 시기의 모습으로 그들의 한계를 결정지을 수도 없으며, 따라서 그들의 실력과 연결될 수 없다. 재능과 노력은 측정불가능하며 따라서 한 시기의 흥망을 근거로 개인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한 시기는 인생의 부분집합임과 동시에 그 시기의 고유성을 지니며, 따라서 스포츠 만화 속에서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 만화는 영원한 현재의 이야기이다. 스포츠 만화는 바로 지금, 목전에 있는 대회에서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가, 그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며 어떤 것을 행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래 또한 밝을 수도 있다. 미래가 어두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빛나고 있다. 그것이 스포츠 만화가 만들어내는 서사인 것이다. 이러한 문법 속에서 구태여 현재와 동기화된 미래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수치화된 재능과 그에 따라오는 고정된 미래라는 클리셰가 어떤 해악을 미치는가가 드러난다. 미래는 한 순간의 미학을 파괴한다. 지금 부상이 악화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뛰기를 결정하거나, 당장 타인을 이길 수 없음에도 노역하는 그 모든 결정을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섣부른 재단은 장르를 자기파괴적인 무언가로 몰고 간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스포츠 만화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으며 따라서 제거할 수도 없다는 이율배반에 직면하게 된다.